안녕, 나 다영이야. 잘 지내지? 너도 알다시피 도큐멘타를 보러 독일 카셀에 다녀왔어. 전시장(venue)들이 네 개 지역(area)으로 나누어져서 카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더라. 나는 여덟 군데 정도를 둘러봤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소는 Fridericianum이었어. 기둥(column)을 새하얀 건물의 색과 대조되는 검은색으로 칠한 다음 평화, 지속가능성 등의 의미가 담긴 그림을 그려놓은 작업이 기억에 남았거든. Fridericianum은 앞에 큰 광장이 있고 주변의 어느 전시장을 가든 이 앞을 지나가게 돼. 그래서 이 작업이 이번 도큐멘타의 방향성을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했어. 게다가 이런 건축물은 보통 하얀색인데 까맣게 칠해져 있으니 우위에 있는 이념이 전복되는 듯한 통쾌한 느낌이 들더라.
또 기억에 남는 건 Karlswiese(Karlsaue)에 있는 The Nest Collective의 작업이었어. 나는 Exhibition Walk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들르게 됐어. 오래된 옷더미들로 된 거대한 설치물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니 화면에서는 <Return To Sender – Delivery Details>(2022) 영상 작업이 재생되고 있더라. 작업에선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 나라들로 의류 폐기물이 모이면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영상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주변에 아무렇게나 찌그러져 있던 폐기물들이 오랑주리(orangerie)와 함께 시야에 들어차면서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어. 우리를 안내했던 스태프-Art Mediator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런 충격을 받기를 원했는지 두 시간 동안 투어를 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이 작업을 보여줬어.
이렇게 만난 수많은 작업들에는 세계 각지의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인 목소리가 담겨 있었어.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도큐멘타가 왜 이런 작업들을 소개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더라. 무거운 주제의 작업들을 계속 보다 보니 지쳐서 장소를 옮길 때마다 당과 수분을 보충해야 했거든.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내린 결론은, 도큐멘타의 권위와 파급력을 기반으로 사안의 심각성을 널리 공유하며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에서가 아닐까 싶었어. 어쩌면 도큐멘타를 보러 이곳에 와서 작업들을 살펴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사회와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는 행동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카셀에서의 이틀은 그동안 살아온 반경에서는 마주할 수 없었던 사안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고민하게끔 하는 시간이었어. 개막 초반에는 작품이 철거되는 이슈도 있었고, 비자 문제로 카셀에 오지 못한 작가들도 있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곳의 분위기가 심각한 건 아니었고, 친근한 지역 축제처럼 느껴졌어. 사실 한 달 넘게 유럽에 와 있으면서 언어나 문화의 차이를 느낄수록 혼자 이곳에 던져진 느낌이 들더라. 그런데 Exhibition Walk를 하면서 함께 본 것에 대해 소감을 나누고 에어비앤비에서 묵으며 카셀에 사는 호스트의 일상을 엿보고 나니까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이 들더라. 좋은 작업과 전시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Documenta Fifteen》에서 배우고 느낀 생각과 감정을 잘 간직한 채로 지내다, 2027년에 함께 《Documenta Sixteen》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또 편지할게. 안녕!
- 전시 개요 -
[제목] Documenta Fifteen (도큐멘타 15)
[장소] 독일 카셀 일대
[기간] 2022-06-18 ~ 2022-09-25
[전시 정보] (URL)
[관람 일시] 2022-08-04 ~ 2022-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