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의 재개관전 《낭만적 아이러니》는 각 층에 작가 한 명씩을 배치했어요.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안지산, 김인배, 이동욱, 노상호, 권오상의 작품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작가마다 공간을 완벽히 분리해 마치 다섯 개의 갤러리가 한 건물에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5층부터 관람하는 것을 권장하는 것과 달리, 길을 헤맨 저는 지하 1층부터 올라가며 관람하고 말았습니다. 힘들게 올라가서였을까요. 공간을 기준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5층이었습니다. 본래 VIP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지만,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공개한 곳이었어요. 커다란 통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전시장 조명이 조화를 이루며 권오상 작가의 조각을 비추고 있었고, 통창으로 보이는 주변 경관도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는 노상호 작가였어요. 이번 전시에서 노상호 작가는 디지털과 현실 세계 간 이미지 생산과 소비에 대해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는 신작 〈Holy〉를 소개합니다. 작가는 무료로 사용 가능한 3D 이미지로 화면을 구성하고, AI를 이용해 새로운 이미지를 탄생시킨 다음, 그것을 가장 고전적인 회화에 접목시켜요. 회화의 재료로 무척 얇게 표현할 수 있는 에어브러시를 주로 사용하면서도, 석고와 같은 재료로 다양한 두께감을 추가합니다. 그 결과 머리가 두 개 달린 사슴, 책 읽는 토끼 같은 미스테리한 이미지에 ‘아날로그’스러운 형태가 더해진 오묘한 작품들이 전시실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여러 업계와 마찬가지로 미술계 역시 AI에 대한 논쟁이 활발합니다.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를 표절 작품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작업 방식을 활용한 작품으로 봐야 할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최근에는 OpenAI가 선보인 ‘ChatGPT’가 이슈몰이를 하자 일부 창작자들은 직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AI가 만든 이미지를 다시 회화로 풀어내는 노상호 작가의 작업은 굳건한 창작자의 위치를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AI가 아무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고 한들, AI는 그저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일 뿐이고, 인간의 창의성은 AI보다 훨씬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고요. 한편으로는 인간으로서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섬뜩하기도 하고, 인간의 마지막 발악처럼 느껴지네요. 결국 작품을 보며 인간과 AI가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다다르게 되었어요.
《낭만적 아이러니》에서 만난 작업들은 온건한 첫인상과 달리, 깊이 들여다볼수록 생각이 많아지게 했습니다. 이동욱 작가의 작품 앞에선 아찔한 긴장감을 느꼈고, 김인배 작가의 작품들은 아이러니한 포인트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모든 층을 관람하고 나니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재개관전으로 이 다섯 작가를 소개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어떤 전시를 선보일지 기대해봅니다. 🤨
- 전시 개요 -
[제목] 낭만적 아이러니 Roman Irony
[장소]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기간] 2023-02-01 ~ 2023-03-18
[전시 정보] (URL)
[관람 일시] 20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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