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살구씨’ 🍑
- 극단 백수광부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2〉 낭독공연
어느 금요일 저녁, 저는 ‘극단 백수광부’의 연습실을 찾았습니다.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2〉 낭독공연을 보기 위해서였죠. 이 작품은 극작가이자 연출가였던 윤영선의 미공개 작품입니다. 2000년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1〉이 초연한 후에 부족함을 느껴 2를 썼지만, 완성도 등의 이유로 1을 같은 해 재연하고 그렇게 2는 공연된 적이 없다고 해요. 지난해 그린피그 윤한솔 연출의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1〉을 보고 왔던 저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주인공인 여자는 무기력한 현대인 그 자체입니다. 삶에 별 감흥도, 열정도 없어 보이죠. 그런데 어느 모텔에 묵으러 갔다가 벽장 속에서 웬 사람들이 튀어나오고,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심문과 추궁을 당합니다. 이후 여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웬 신발가게 티켓을 받습니다. 이름 모를 사람으로부터 신발가게에 가지 말라는 전화도 받지만, 아버지 신발을 맞추려는 여자는 기어코 신발가게에 찾아가고 맙니다.
여자에게 이런 기이한 사건들이 벌어졌던 것은 사실 여자가 가지고 있었던 살구씨를 가져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장은 헌 신발을 ‘당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신던 신발’이라며 판매를 사람입니다. 그는 여자의 사라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세상의 이치에 대한 얘길 합니다. 그러면서 여자에게 이제 그만 살구씨를 달라고 해요. 그러나 더 놀라운 건 여자의 다음 행동입니다. “살구씨는 내 거야!” 여자는 울부짖으며 자신의 눈에 살구씨를 파묻어 버립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이야기가 기괴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일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많은 함의가 내재된 작품이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적어도 나무는 인간을, 신발은 문명-나아가 자본주의 사회-를 의미한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져요. 저는 ‘살구씨’가 사람들이 저마다 일구어 낸 자신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비유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것을 매력이나 장점 따위의 단어로 치환하는 건 왜인지 아쉽게 느껴졌고요. 모쪼록 살구씨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여자가 신발가게에 찾아가게 되면서 살구씨를 눈에 파묻는 장면은 거리에서 사람들이 눈알을 들고 나와 조수에게 파는 장면과 대조가 되어 더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버스의 창밖으로 펼쳐지는 서울의 풍경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 돈 단어는 다름 아닌 ‘고생’과 ‘보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일하면서 최근에 보람을 느낀 적이 있나요? 최근 저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어요. 요즘 회사에서 하는 일이 보람을 느끼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의 일이 고생이라는 생각도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들여 뉴스레터를 만들거나 먼 곳으로 공연을 보러 다니는 일은 고생이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보람도 느낍니다. ‘일’이란 대체 뭘까요. 인간은 왜 사서 고생을 하고 그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걸까요. 월급을 받고 일하는 순간, 왜 좋아하는 마음은 말라가는 걸까요. 연극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2〉는 제게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한 아름 안겨 주었습니다. 부디 이런 고민이 저만의 ‘살구씨’가 되어주면 좋겠어요.
- 공연 개요 -
[제목]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2
[장소] 백수광부 연습실 2층 스튜디오
[공연 정보] (URL)
[관람 일시]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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