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향 2023 마르쿠스 슈텐츠와 조슈아 벨〉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저는 요즘 클래식에 빠졌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의 바이올린 줄이 끊어진 연주 영상을 보고,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의 음악을 듣고서 잠에 들거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라는 책을 읽으며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 음악을 듣기도 해요. 유튜브와 애플 뮤직엔 ‘Classic’이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가 생겼죠. 🎼
이번에 관람하고 온 〈2023 서울시향 마르쿠스 슈텐츠와 조슈아 벨〉 공연도 이런 관심의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최근 이진상 피아니스트의 독주 공연을 보고 나니 수십 명이 무대를 채운 웅장한 작품을 보고 싶었어요. 솔직히 쇼숑과 비외탕이라는 음악가는 잘 몰랐지만.. 공연 소개와 프로그램 노트를 읽다 보니 바이올린의 서정적인 멋을 느끼고 올 수 있을 거란 예감이 잔뜩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2부에 있을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무용감상 수업 때 접한 작품들의 음악이라 실제로 들어보고 싶었고요. 그렇게 설렌 발걸음으로 예술의전당을 찾아갔습니다.¹⁾
공연 10분 전까지 콘서트홀 로비에 있는 음반 가게를 구경하다 허겁지겁 자리를 찾아 앉았을 무렵, 이미 무대에선 어떤 연주자들이 조율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관객과 연주자 모두 하나둘 자리를 찾고, 수석 연주자가 입장해 모두 한 번 더 ‘라(A)’ 음에 맞춰 조율을 하고서,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와 오늘의 협연자 조슈아 벨이 등장했습니다. 그러고선 곧장 어떤 여백도 없이 연주를 시작했어요. 저는 이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도 낯선 사람이었기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절로 굳었습니다. 그런데 글쎄 연주가, 너무, 좋은 거예요!
1부에선 쇼숑의 음악도 좋았지만, 비외탕 바이올린 협주곡은 온 정신을 집중해서 보게 되었어요. 특히 조슈아 벨의 기교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했던 생각은 대충 이런 것들이었어요. ‘바이올린이 이런 소리를 내기도 하는구나’, ‘어라 이건 언제 배웠던 기법인데’, … 조슈아 벨은 연주를 모두 마치고서 앵콜로 쇼팽의 ‘녹턴 C# Minor’를 연주했는데, 이 음악을 들을 땐 정말이지 녹아버릴 뻔했습니다. 😅 젊은 시절 인기가 엄청났었다고 하던데, 그때 조슈아 벨의 공연을 봤었다면 저는 바이올리니스트 덕질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외에 관악기와 현악기가 서로 선율을 주고받는 것도 아름다웠고, 홀을 가득 채운 음악, 집중해서 숨을 참는 사람들, 끝나고 터져 나오는 박수까지 모두 황홀하지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 뜬금없지만 이들을 지휘하는 마르쿠스 슈텐츠의 몸짓은.. 춤을 추는 것만 같아 마스크 속으로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어요. (죄송합니다!)
인터미션 후에 이어진 2부의 ‘목신의 오후’와 ‘봄의 제전’은 1부와 상반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같은 극장과 연주자, 관객인데도 ‘봄의 제전’을 들으면서는 스산하고 생경한 기분이 들었달까요. 한편으론 눈을 감으면 무용수들의 점프가 절로 상상이 갔고, 초반부 바순의 선율이나 타악기의 타이밍, 첼로의 리듬감 등을 따라가다 보니 볼거리가 참 많은 곡이구나 싶었습니다. ‘봄의 제전’은 1913년 초연 당시 소동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한데, 초보자인 제 입장에선 지금 들어도 난해한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저들은 이 음악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주하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나는 익숙한 선율이 없으면 난해하다고 여기는 걸까, 따위의 이런저런 고민도 들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음악을 ‘봤다’고 표현하고 있었네요. 아마도 음악을 듣는 행위뿐만 아니라, 그것을 연주하고 지휘하는 무대 위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유심히 봤기 때문일 겁니다. 게다가 이 음악을 이곳에서 이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집에서 혼자 이 음악을 들을 때 지휘자의 손짓이나 현장의 느낌을 떠올리고 싶었거든요. 제겐 클래식 또한 현장에서 직접 연주를 보고 들을 때 훨씬 밀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는 걸 이렇게 깨닫게 됩니다.
클래식에 문외한인지라 나만 좋게 들었으면 어쩌나 싶어 후기를 열심히 찾아보니, 사람들의 극찬이 가득합니다. 휴! 저의 첫 클래식 공연 관람은 대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자, 이제 다음 공연은 무얼 보러 가볼까요? 🤩
¹⁾ 저는 이번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관람이 처음이었답니다. 교향곡, 협주곡을 실제로 보는 것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