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 <Fake or Fortune?>
제겐 꾸준히 꺼내어 보는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BBC의 <Fake or Fortune?>이라는 프로그램이에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두고 위조품인지 진품인지 추적해 내는 내용이죠. 🔍 우리나라로 치면 마치 어린 시절에 일요일 아침마다 봤던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 같달까요(물론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절찬리에 방영 중입니다). <Fake or Fortune?>역시 2011년 시작되어 현재 열 번째 시리즈까지 나온 영국의 인기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이 다큐멘터리를 처음 접하게 된 건 넷플릭스에서 라우리(L. S. Lowry)의 에피소드를 보게 되면서부터였어요. 소장자는 작품 기록이 없어 진품임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는데요. 위조가 쉬워 모조품이 판매된 적도 있다던 라우리의 작품인지라, 도입부에만 해도 해결이 무척 어려울 것처럼 보였습니다. 라우리는 단 다섯 가지 색의 물감만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 작품엔 다른 물감이 쓰였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작품이 라우리가 실험한 적 있는 바로 그 물감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정말로 라우리의 작품이었던 거예요! 이처럼 진행자들은 지난한 추적 끝에 진품인지 아닌지를 밝혀냅니다. <셜록>이나 <크라임씬> 같은 추리물을 좋아하는 저로썬 흥미진진한 전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어요.
각각의 에피소드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다루고 있어 순차적으로 보지 않아도 되니, 저는 얼마 전에서야 첫 번째 시리즈의 첫 에피소드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선 이집트의 모 미술관까지 찾아가서 작품의 기록을 찾아내요(BBC의 권위와 자본력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네의 카탈로그 레조네¹⁾를 만드는 ‘Wildenstein Institute’에서 이 작품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유사한 풍경을 그린 그림이 카탈로그 레조네에 없다는 이유로요! <Fake or Fortune?>은 첫 화부터 ‘권위가 예술을 만든다’는 미술계의 작동 원리를 밝혀내며,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에드가 드가, 터너, 헨리 무어, 모딜리아니, ….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서양미술사 주요 거장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어, 정주행 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게 미술사 공부를 할 수 있어요.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더 이상 넷플릭스에서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글 자막으로 볼 수 없긴 하지만.. 영어 공부용으로라도 볼 만하다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
¹⁾ 작가의 전작 도록이라고도 불리우는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 Raisonne)는 한 작가의 주요한 모든 작품을 목록화하여 기술한 기록물입니다. 이 논문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