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다녔던 사진관을 오랜만에 찾아갔습니다. 용모 단장을 위한 거울도, 증명사진을 찍는 자리도, 사진관 아저씨의 컴퓨터와 각종 장비도 모두 그대로였어요. 초등학생 때 생일 파티를 했던 피자 가게와 친구들과 매일 같이 간 햄버거 가게는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만 남기고 사라져서 몹시 허전했는데 말이죠. 이렇게 옛 흔적을 그대로 갖고 있는 공간이 남아있다는 게 참 감사해요. 동시에 이 사진관마저 사라져서 추억을 정말로 모조리 잃게 되면 어쩌나 싶네요. 지금부터라도 동네 사진을 많이 남겨둬야겠습니다. 📸

- 민선 🧐 -

🖼 《서동욱 개인전: 토성이 온다》 @송은

🖼 조영주 개인전 《카덴짜》 @송은 (리뷰)

🖼 《필립 파레노: 보이스》 @리움 (리뷰)

🖼 《Deep Dip》 @이유진 갤러리 (리뷰)

🖼 《Nostalgics on realities》 @타데우스 로팍 서울

🖼 《Nothing is yours, Everything is you》 @탕 컨템포러리 아트 서울 (리뷰)

🖼 《ZHANG YINGNAN: MELTING》 @쾨닉 서울

🎭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국립정동극장

📚 김초엽, 『행성어 서점』, 마음산책, 2021

이번 레터에는 다영이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를 리뷰합니다. 🌈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영원히 믿는 마음 🛸

—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국립정동극장

“아무도 죽지 않는 이야기일 것.” 도은 작가가 처음 초고를 구상하며 떠올린 이 말을 읽고, 저는 이 작품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연극을 보는 빈도가 늘면서 자극적인 소재나 폭력적인 묘사가 가득한 작품을 더욱 빈번하게 보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찜찜한 마음을 안고 극장을 나온 경험이 많고요. ‘충분히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긴 시간 고함을 지르는 걸까? 다른 방식일 수는 없나?’ 객석에 앉아 있는 순간이 영겁의 시간으로 느껴질 때마다, 덜 불쾌한 작품을 보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곤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는 적확하게도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는 2000년생 재은과 윤경이 단짝 친구에서 연인이 되고 가족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극 중 시간대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2007년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 2099년까지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어요. 🕰️ 이러한 비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은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극 중엔 이들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없고,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지 않으며, 작가의 말대로 아무도 죽지도 않아요. 연극이 끝나고 나니 ‘그냥 사람 이야기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재은과 윤경 부부, 그리고 그들의 딸 재윤까지 세 사람이 주고받은 사랑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때문에 극 중 재윤이 자신의 파트너에게 편지를 쓰는 내용의 독백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집으로 돌아왔고요.

하지만, 저는 연극in에서 한 리뷰를 읽게 되면서 기분이 오묘해졌습니다. 🤔 ‘퀴어라는 두 사람의 정체성만 소거하면 성공한 이성애자 부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리뷰 대로 연극 속 인물들은 한국 사회가 생애주기 별로 기대하는 일을 충실히 해내었고, 인생의 목표나 가치관을 두고서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현실의 저나 제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데다, 헤테로 로맨스 드라마에서나 봤던 거였죠. 때문에 오히려 이런 점에서 불편함을 느꼈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뒤늦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누구나 부담 없이 보기 좋은,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해요. 재은이 말하는 행복한 동시에 불행한 기분이 뭔지 잘 알 것만 같고, ‘우주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고독할 때 끝까지 서로를 위해 끝까지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단 대사는 두고두고 곱씹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의 결말이 둘의 결혼이나 이별이 아니라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오래전 사진 속 UFO를 봤던 두 사람이 우주여행을 가는 것이 결말이자 첫 장면이거든요. 그러고 보니 우주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굳게 믿는 무언가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생각도 드네요. 실체는 없지만 믿어 마지 않는, 그래서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을 하는 존재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며, 이 글을 마칩니다. 💜

인스타그램에서 불타는 눈사람을 모티프 삼아 제작한 양초 사진을 보자마자 (마음속으로) 박수를 치게 한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재개관 후 개최했던 전시 《낭만적 아이러니》에서 처음으로 노상호 작가 작품의 매력을 느꼈는데요. 현실과 디지털 세계가 만나 오묘하게 뒤틀린 듯한 느낌을 전통 장르인 회화로 표현했다는 점에 푹 빠졌습니다. 노상호 작가의 인스타그램과 X(구 트위터)를 팔로우하며 새로운 전시를 간절히 기다려 왔죠. 여러분도 불타고 있지만 녹지 않는,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오묘한 눈사람의 매력에 푹 빠져보세요. ⛄🔥

4월이라니.. 성큼 봄이 왔네요. 한 달에 한 번 레터를 보내다 보니 마감이 돌아올 때면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게 더욱 실감 납니다. 이번 레터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