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너스 반 데 벨데의 세계로.. 🚗
— 전시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 이수
어릴 적 애니메이션 ‘윌레스와 그로밋’을 보며 주인공을 따라 달에 가서 치즈를 똑 떼어 크래커에 발라 먹어보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 여러분도 이런 상상을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것 같아요. 우리의 어릴 적 상상은 전시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에서 현실이 되는 듯했습니다.
전시는 상상과 현실, 가짜와 진짜, 미술과 언어 등이 충돌하며 삶과 예술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전시의 핵심은 영화 〈라 루타 내추럴〉과 〈하루의 삶〉인데요. 영화에는 작가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쓴, 작가의 도플갱어가 등장합니다. 마스크가 배우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제거하니 오히려 극의 소품이나 주변 환경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주인공을 따라 반 데 벨데의 초현실적인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었죠. 🛸
반 데 벨데의 영화는 첫 장면과 끝 장면이 이어져서 관람객이 언제 감상을 시작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색함이 없더라고요. 저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문득 돌고 도는 작가의 상상 속 세계에 갇혀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돌고 도는 반 데 벨데의 이야기… 넌 벗어날 수 없어..!) 게다가 전시실 여기저기에 자유롭게 놓인 영화 속 소품들은 마치 내가 이미 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한편 아트선재센터 각 층에 걸린 오일 파스텔화는 작가가 앙리 마티스 같은 20세기 초 외광파¹ 작가들과 ‘상상의 대화’를 나누고 ‘상상의 풍경’을 그린 것이었는데요. 🎨 외광파 작가들은 빛과 자연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야외에 직접 나갔지만, 반 데 벨데는 작업실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대신 작업실 안락의자에서 ‘상상의 여행’을 하죠.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어요. “무언가를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현실의 풍경에 시선을 끌기 좋은 상상 속 풍경이 더해지니, 현실과 상상의 장점을 모두 가진, 더 흥미로운 풍경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오일 파스텔화의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글씨가 잔뜩 적혀 있었습니다. 마치 폴라로이드 사진에 메모를 해둔 것처럼 말이죠. 작가는 작품을 완성한 후 생각난 글귀를 적는다고 하는데, 일부 문구는 마치 그 장면을 실제로 보고 적은 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작품 〈나는 해와 달과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의 경우 앙리 마티스의 말을 인용해 적어둔 거라고 해요. 여기에서 따 온 전시 제목은 터무니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럴 듯한(!) 반 데 벨데의 작품세계를 잘 반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처럼 전시는 작가가 만든 세계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여러 장치를 활용해서 상상과 현실이 충돌하게 만들었습니다. 반 데 벨데의 마스크를 뒤집어쓴 배우가 아트선재센터 어딘가를 탐험하다가 제 옆에 슬며시 나타날 것만 같았죠. 과연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이었을까요? 전시실에 현실이 존재하긴 했던 걸까요? 제겐 자꾸만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하는 전시였습니다. 🧐
¹ 외광파 : 태양광선 아래서 자연을 묘사한 화가들, 즉 실내광선이 아닌 야외의 자연광선에서 비추어진 자연의 밝은 색채효과를 재현하기 위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 화파를 총칭합니다.